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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와 마굿간, 여관, 한번 정리해봅니다.
간략히 몇 가지로 깔끔하게 핵심을 요약했습니다.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구유에 눕힌 것은 일종의 환대이지 박대는 아니었다는 새로운 해석 때문에 뜨거웠네요.

양쪽이 팽팽히 의견을 고집했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로 전통적 해석이 옳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굉장히 긴 글과 토론이 이어졌는데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토론이 너무 유익했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셔서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신 이국진 목사님, 김태훈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1. 새로운 견해에 의하면, 예수는 마굿간이 아닌 주인방에서 태어난 것이므로 홀대를 받은 것이 아니다. 마굿간과 주인 방이 연결되어 있는데, 구유통은 주인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2. 요셉 가족은 "여관"을 못잡은 것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의 "객실"을 못구한 것이고, 객실이 만원이라 주인이 자기 방을 내준 것이니 이건 오히려 임산부 가족에 대한 극진한 환대였다.

3. 강력한 근거는 케네스 베일리의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에서 고증된 가옥 구조와 그의 주장인데, 가옥 구조가 앞서 (1)에서 말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4. 더구나 "명예와 수치"를 생명으로 삼는 당시 문화권에서 임산부 홀대라는 것은 생각해보기 어려운 일이다.

5. 나아가 베들레헴은 요셉의 고향으로 거기에 친인척이 즐비하고 다 아는 사람들일 것인데, 요셉이 이런 박대를 받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6. 추가로 "마굿간"이란 말은 일반 가정집에서 말을 키우지 않았기에 잘못된 것이니 이것도 수정해야 한다(표준어는 마구간이지만 통과).

대체로 이런 주장과 견해입니다. 저는 정말 이것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분명 이것이 누가의 증언과는 들어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견해입니다.

1. 배경적 지식이 본문의 명증한 진술을 뒤집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누가는 "방을 못구해 누울 장소가 없어서" 구유통에 아기 예수를 눕혀야만 했던 상황을 분명하게 진술한다.

2. 분명 신생아를 구유에 놓는 일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았는데, 누가는 요셉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눕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3. 여기서 해당 헬라어가 "여관"이냐 "객실"이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난 그 단어의 용례를 70인경과 신약에서 뒤져보고서 둘 다를 포함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요셉 가족은 어디든 "숙소"를 못구한 거다.

4. 바로 여기서 배경적 지식에 근거한 해석은 명증한 본문의 진술과 의도에 뒤따라 와야하고, 그것에 따라 정황을 재구성해야 한다.

5. 토론과정에서 바뀐 생각은 주인은 결코 매정하진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임산부 가족을 "모셨다." 그러나 객실은 이미 다 들어차 별도의 공간을 내줘야만 했다.

6. 그런데 그 공간이 과연 자신의 안방이었는가? 그래서 객실보다 더 나은 곳을 내준 셈인가? 주인 가족은 마굿간과 구유통 자리에서 떨어진 더 나은 곳에 자리잡고, 손님에 대한 배려로 구유통을 치우고 거기에 눕게 했을까?

7. 이 견해는 레위기 12장의 정결법에 의해 거부되어야 한다. 이건 베일리가 생각하지 못한 큰 실수로 보인다. 산모는 남아의 경우 1주간, 여아의 경우 2주간 접촉 불가로 격리되어야 한다(그 후 각각 33일과 66일간 성소 접근이 금지되고 성물인 화목제를 먹을 수 없으나 접촉과 일상생활 가능). 유대인에게 정결법의 엄격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주인 가족이 부정한 마리아와 같은 공간에 있었을 것 같지 않다.

8. 케네스 베일리가 제시한 가옥 구조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편화 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어떤 페친이 자신이 만난 이스라엘 교수는 베일리의 가옥구조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다양한 가옥구조가 나오며 특히 마굿간은 별개의 장소로 독립되어 있는 가옥구조물이 많이 나온다.

9. 결국 주인장은 그 딱한 처지의 요셉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묵을 공간을 마련해주었는데, 바로 축사 앞의 구유통 자리였고, 그곳은 주인방과 별개의 장소로 파악된다. 사실상 그곳은 마굿간이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도 외양간의 먹이통은 밖에 나와 있다. 즉, 아기 예수는 "누울 자리가 없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10. 작은 마을, 친인척 사는 베들레헴이 그리 매정했을 수 있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룻기를 보면, 고향 베들레헴으로 거지가 되어 돌아온 나오미와 며느리를 친족들 중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쉽게 말해 그 과부들은 아무런 유익(돈)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장 먼 친족으로 별다른 의무 사항이 없었던 보아스가 그들을 구출했다.

11. 그러니 명예와 수치로 해석이 다 가능한 게 아니다. 사람사는 동네는 환대의 문화도 있지만, 또한 계산기를 두들기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필시 사람들로 붐빈 그 대목 시기에 가난한 초라한 행색의 요셉 가족은 환영받지 못했는데 바로 그 주인장이 그나마 그들을 챙겨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선 그 주인장이 보아스인 셈이다.

12. 신학적 관점으로는 하늘의 왕이 왕좌가 아닌 짐승의 먹이통 구유에 앉아야만 했음을 강조하는 누가의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

13. 마지막으로 마굿간이란 말은 그냥 써도 무방하다고 본다. 혹자는 나귀는 축사에 가두어 키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누가복음의 다음 진술로 쉽게 반박된다.

(눅 13: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4. 여기서 소는 정말 비싼 짐승으로 심지어 고대 근동 연구자의 주장에 의하면 어떤 지역은 한 마을에 한 마리만 있을 정도로 귀했다. 그러니 주로 더 대중적인 짐부리는 필수 가축 나귀를 거기 두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나귀 굿간이란 말은 없으니 그냥 "마굿간"으로 해도 무방하다. 본질은 아니니 이런 걸 따지지 말고 해오던 대로 그냥 마굿간으로 하자고 제안한다.

제 견해는 이렇게 정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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